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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촉즉발 러시아, 당장 손잡으라는 이유는? [북방정책 전문가 인터뷰]

Author
abdullah
Date
2021-12-29 12:41
Views
196

[매경이 만난 사람] 4차산업혁명 전문가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


ICT 발달로 물류량 급증, 기존 항로는 이미 포화상태,북극항로로 시간·비용 줄여야


미국의 주적은 러 아닌 중국, 러시아, 극동지역 중국화 우려, 韓과 러시아 협력할 여지 충분

새 길 열릴 때 새 시대도 열려, 한반도가 동북아 중심축 될 것

안병준 기자입력 : 2021.12.28 17:52:02   수정 : 2021.12.28 22:37:22댓글 0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가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진행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러 협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인류 문명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길이 뚫릴 때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기존 항로는 이미 과포화 상태인데,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더욱 가속화한 4차 산업혁명으로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에 상응하는 물류량 급증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북극항로를 선점하기 위해 러시아를 새로운 동반자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서울대 공과대학 사무실에서 만난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산업혁명 전문가로 손꼽힌다.


그런 그가 인류 문명사 전환의 맥(脈)을 짚으며 한미동맹의 새로운 동반자로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러시아를 꼽은 것은 의외였다. 김 교수는 향후 10년 안팎에 현실화될 북극항로를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그동안 열강의 각축장이나 다름없던 한반도가 동북아 중심축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중·일의 연횡(連衡)과 한·미·러의 합종(合從)이 견제와 균형을 이뤄 우리가 동북아시아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저서 '한국의 선택'을 국내 러시아 전문가들과 함께 엮어냈다. 긴밀한 대(對)러 관계 구축을 통해 성장과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그의 원대한 구상을 들어봤다.

―새로운 길이 왜 필요한가.

▷비단길로부터 상업혁명의 근간인 향신료길, 영국의 산업혁명을 촉발한 대서양항로 등 새로운 길이 열릴 때 인류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 현재 가장 물동량이 많은 극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로는 남중국해, 믈라카해협, 인도양, 홍해, 수에즈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간다. 경유지 곳곳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분쟁 지역이다. 지난 3월에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인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서 좌초되는 사고가 일어나 전 세계적으로 물류 대란이 발생했다. 지구상 모든 항로는 이미 적정 수용 능력을 넘어서 새로운 대체 항로가 절실한 상황이다.

―북극항로는 무엇이고 가능한가.

▷북극항로에는 북동·북서항로가 있는데, 베링해협에서 러시아 북쪽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북동항로를 말한다. 기후변화로 향후 10년 이내에 바닷길이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북동항로 이용 시 동남아를 거치는 수에즈운하 노선보다 시간과 비용을 30%가량 줄일 수 있다. 북극항로 전용 쇄빙선을 개발한다고 해도 항해 루트의 상당 부분은 러시아 영해를 지나야 해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4차 산업혁명과 북극항로가 무슨 관계인지.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시대는 전 세계 모든 생산자가 전 세계 모든 소비자를 대상으로 모든 맞춤화된 상품을 사고파는 세상이고, 근로자는 늘어난 여가 시간에 지구상 모든 곳을 여행하는 세상이다. 인터넷 통신이 늘어날 때마다 화물 운송량도 같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지식기반사회의 화물 총량은 산업사회의 화물 총량을 몇 배 웃돌 수밖에 없다.


―북극항로의 경제성은.

▷끝없는 동토를 따라 강추위 속에서 장거리를 운항하는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실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과거 대항해시대를 연 서유럽 해양전사들이 조그만 범선에 몸을 싣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서양을 횡단하던 항해보다 북극항로가 더 절망적일까.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스페이스X를 통해 화성 개척을 시도하고 있고,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은 달 개척을 공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머스크의 화성, 베이조스의 달, 한국의 북극항로 중 어느 것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고 경제적인 시도가 되겠는가.


―북극항로 외에 대러 관계 유용성은.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데 한·중·일 협력의 균형발전을 위해 러시아가 꼭 필요하다. 중국은 한국 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앞으로 한중 관계가 중국의 선의와 국제 관행에 따라 잘돼 나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다. 또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유예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있어 일본은 한국보다 더 쓸모 있는 파트너다. 그렇다면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러시아 외에는 없다.


―러시아 입장에서 한국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러시아는 중국인들이 대거 러시아 영토 내로 이주해 자리 잡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중국이 청나라 영토라고 주장하는 극동러시4아가 중국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북방섬 영유권을 두고 영토 분쟁 중이다. 한·러 관계가 발전해 독도 문제와 북방섬 문제를 가지고 한국과 러시아가 공조 체제를 갖추는 것은 일본에서 원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극동 개발을 위한 믿을 만한 파트너는 오직 한국밖에 없다. 게다가 러시아 국민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1, 2위를 넘나들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의 상호 협력 관계는 결코 일방적 짝사랑이 아니다.


―러시아는 무슨 이익을 얻나.

▷한·러 협력은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에도 '윈윈'이 된다. 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PNG)을 휴전선까지 책임지고 연결해주겠다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문명사에 무지한 한국 지도자들이 러시아의 제안을 묵살해버렸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첨단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으나 응용기술과 산업화 능력이 부족해 우리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등 북극해 유전 개발에 투입할 쇄빙 LNG 운반선 건조 기술은 한국밖에 없다.


―한미동맹 속 한·러 협력의 가능성은 있나.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제재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의 정부, 언론, 지식인 어느 누구도 러시아를 미국의 주적(主敵)으로 지목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중국을 미국 주도 국제질서상 주적으로 생각한다. 미국은 냉전시대 소련과 공산권을 유럽과 아시아에서 포위해 몰락시켰고 지금 다시 대중국 포위망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은 군사안보 측면에서 러시아 없이는 절대로 완성될 수 없다.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이 문명사적 '사실'이라면 미국의 러시아 제재는 일시적 '사건'에 해당한다.


한·미·러 합종은 문명사적 결단…차기정부가 마지막 기회 잡아야

北자원 노린 통일대박 안 믿어, 북방정책으로 외교영토 확대를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남북 분단 현실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북방정책이 통일정책의 하부 정책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의 협력관계 구축을 통한 북극항로 개발 참여, 동북아시아 균형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차기 대통령의 외교정책 최우선 어젠다로 북방정책이 올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의 북방정책을 평가하면.

▷2015년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최해온 동방경제포럼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매년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우리는 처음 대통령이 가다가 다음에는 총리가, 그다음에는 부총리가 참석하는 것만 보아도 대한민국 지도자의 문명사적 식견의 빈곤을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러시아 간 9개 경제협력 전략을 담은 일명 '나인브리지(9-BRIDGE)'는 기존 정책을 묶은 포장에 불과하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통일 외에는 더 넓은 시각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나는 통일에서 대박이 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통일대박론'에 동의하지 않나.

▷통일되면 남북한 인구가 1억명에 근접하는 거대 경제권으로 부상하고, 북한 지하자원과 남한 산업 기술이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서 우리가 당장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통일대박론'은 국가 발전 원리에 맞지 않는 것이고 차라리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주장이다. 지구상에 인구 1억명 이상의 선진국은 미국과 일본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행복한 선진국일수록 오히려 인구가 많지 않다. 북한의 지하자원은 그 매장량 규모도 매우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자원의 저주'라는 말도 있어 북한 자원으로 한국 경제가 선진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럴 듯한 작위적 주장일 따름이다.


―대러 관계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되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정부와 진보정부가 가능한 강온 양면 전술을 모두 시도해봤다. 그러나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선택지 중에 정답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한국과 러시아 간 전천후 협력 관계가 앞서 언급한 지정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북극항로를 중심축으로 에너지, 물류, 과학, 기술, 산업,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 나가게 되면 답보 상태에 있는 북핵 문제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일거에 해결될 수도 있다.


―대러 관계 구축이 늦었나.

▷미국이 러시아 제재를 전격적으로 풀어 대중국 포위망을 완성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만약 미국의 러시아 제재가 풀리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거대 경제권에 비해 자금력과 국제적 영향력이 절대 열세인 한국은 한·러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어진다. 저조한 출산율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가 한·미·러의 합종이라는 문명사적 결단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김태유 명예교수는…

△1951년 부산 출생 △서울대 공과대학 공학과 졸업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 경제학 석사 △미국 콜로라도광업대 경제학 박사 △서울대 공과대학 자원공학과·산업공학과 교수 △2003년 대통령 정보과학기술 수석보좌관 △2006년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 △2011년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2017년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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