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ical Research Project
Knowing the past and Preparing for the Future
Muslim-Arab Korea naturalization and settlement Seminar(Paper Draft)
Author
Anonymous
Date
2016-04-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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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아랍인 한반도 귀화와 정착”세미나
- 아랍인의 한반도 귀화와 정착, 어제와 오늘
1. 아랍 교류 1400년
아랍(Arab)은 지리적 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본래는 아라비아(Arabia)반도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7-12세기 무렵까지 아랍인들이 세운 아랍제국을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과 아랍의 교류는 신라(BC 57-AD 669)를 찾아온 아라비아 상인들로부터 시작한다.
신라는 비단, 검, 사향을, 아랍은 향료, 유리기구 등을 서로 교환 했다.
이런 교류 역사는 통일신라(AD 676-918)를 아랍 세계에 최초로 소개한 아라비아 상인 술래이만의 “중국과 인도 소식” 여행기(851)에 있다. 문헌에는 당시 신라 거주 아랍인들의 삶, 아랍인들이 바라본 신라의 지형, 자연환경, 생활상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유럽 세계지도에 한국이 등장한 시기보다 400여년이나 앞서는 아랍 지리학자의 세계지도(1154년 발행)는 한국-아랍 만남의 유구한 역사와 뿌리깊은 인연을 잘 보여주고 있다. 6세기 세계를 누비던 아랍 상인들은 초원 길(위구르 몽골 고원) 과 오아시스 사막 길(우루무치, 돈황)로, 그리고 바닷길(인도양 항로)로, 한국과 아랍의 역사적인 교역의 길을 개척하였다. (지리학자 Al-Idrisi, “천애 횡단 갈망자의 산책”)
통일 후 신라는 200년간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았다. 7세기말 신라의 대외무역은 발해, 당나라, 일본과도 이루어졌다. 당으로 가는 바닷길은 전라도 영암에서 상해로, 경기도 남양에서 산동반도로 가는 두 길이 있었고, 울산 항은 국제무역항으로 멀리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9세기 전반에는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 이라는 해군 및 무역기지를 설치하여 당나라에 가는 일본인들이 장보고가 보유한 수백 척의 배를 이용하여 해상무역이 더욱 발전하였다.
해상무역으로 재력과 부를 쌓은 인물로는 장보고를 비롯, 진주의 왕봉규, 개성(송악)의 작제건(왕건의 조부)등이 있고, 이들 중에는 고려 건국의 중심 세력도 있다(우리 역사, 한영우)
당 나라와 아랍 Abbas 왕조(이슬람 제국, 750-1258)와의 탈라스 전투(751)에서 생포된 당 포로
2만명중 다수가 고선지 장군을 따라간 고구려 유민들이다. 이들은 포로로서 아랍에 살면서 고구
려와 당 문화를 이슬람 권에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Abbas왕조 전반기(750-950)에는 정치, 경제가 안정되었고, 그 당시 당 나라(618-907)도 통일로 안정이 되어 두 지역간 교역이 활발하였다. 수, 당은 개방정책으로 이미 외국인을 시험으로 선발, 등용하여 신라 최치원도 당의 공무원이 되었고, 당과 신라는 인적 교류가 많았다.
신라 장보고(790-846)는 해상 무역을 하여, 이때 많은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도 왔다. 7세기 중엽 폐망 한 사산조 폐르시아 왕자 와비단이 651년 신라에 와서 20여년간 살다가, 왕정 복구를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로 귀환했다. (1230년 발행 “아랍 사서”)
아라비아인(아랍 상인)들은 한국을 “전염병이 없고, 물이 좋고, 땅이 기름지고, 사람들이 순박하며,
자연이 아름답다”고 하여, 이슬람 세계에 “불멸의 땅으로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이상향의 국가”
라고 소개 하여, 이때부터 아랍 상인들이 신라를 Al-Shila, Kaoli라고 불러 지금 한국을 Korea로
하게 되었다. (이슬람학자 Rashid Al-Din, 1247-1318, 세계통사’집시 Al-Tawarikh”)
Abbas 왕조의 알 라시드(786-809)재위 시대에는 당과 통일 신라를 잇는 길은 바닷길을 이용했다.
이슬람 상인들은 다우선 이라는 역풍에도 앞으로 전진하는 삼각 돛을 단 범선을 이용하여 바그다
드 외항 바스라, 페르시아만의 시라즈에서 동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당에 이르는 정기 범선
로(帆船路)를 개발했다.
그들은 순풍을 타고 아라비아 해를 통해 약 120일에 걸쳐 광주에 도착했다. 9세기 이슬람 상인은
중국 양주(揚州)에 수천 명의 이슬람 상인과 페르시아 상인이 거주했고, 신라와도 왕래를 했다.(하
룻밤에 읽는 중국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신라에 온 아랍인은 떠나려 하지 않았다”(마크디시, 창세와 역사서)
이슬람교는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 튀르크(터키)간의 오랜 전쟁기간(4-8세기) 급격히 전파되어
8세기에는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걸쳐 광범위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기간 신라에 이어 고려도 대외무역이 활발했다. 왕건도 무역에 종사하던 개성상인 후예이다.
Abbas왕조를 함락한 칭기즈칸이 당시 우수한 아랍 학자를 강제로 데리고 와서 몽골 정부 고위직
에 중용하여, 이슬람 문화가 중국(원나라)과 한국에 전파되었다.
칭기즈칸은 몽골제국 건설에 중앙 아시아 일대 대상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아랍 상인들은
몽골이 동서 교역로를 안정하게 지켜줄 것이라며 군자금과 적에 대한 정보도 제공 했다.
원나라(1215-1294)를 세운 쿠빌라이는 형제인 훌라구가 지배한 “일 한국(汗國)”에서 불러온 이슬람 기술자가 1백키로 넘는 돌을 발사하는 회회포(回回砲)를 제작, 남송을 통일하고, 20년간 이슬람 상인 아흐마드를 재무장관에,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진 이슬람 경제단체 오르톡(Ortag)들에게 이권을 부여하고, 동서를 잇는 초원과, 사막 길, 다닷길 네트워크를 개척, 유라시아 세계에 편입되는 통치 지배 시스탬을 구축했다. (하룻밤에 읽는 중국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원 나라는 중국을 통치하며, 상업적 마인드를 가진 색목인, 주로 아랍인을 중용 했다. 원나라 1억 2000만 인구에, 지배층 몽골인이 100만명, 제2 지배층 아랍인은 100만명이었다.
원나라는 등용한 아랍 지식인을 내정과 세무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성경의 “죄인(罪人)과 세리(稅吏)는 동의어로 비유”됨을 아랍인들도 알고 있다.
아랍인들은 외국인으로 악역을 하며 세금을 징수해야 하는 직업에 불만, 재력을 모으면 “살기 좋
다”는 고려로 이주를 희망한 것으로 보인다.
개성에 아랍 상인 집단촌이 있었고 이슬람 사원 예궁(禮宮)도 있었다.
왜구를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화약이 원나라에서 들어온 항구가 벽란도이다.
벽란도는 송 나라 때부터 국제 무역항으로, 아라비아, 요, 금, 원, 일본 등의 상인들도 많았다.
6-12세 서역 비단길은 돌궐, 거란, 여진, 몽골이 그리고 소그드, 티베트, 위구르와 유라시아 서부
정복 왕조들의 각축으로 이 시기 아랍 상인들은 안전한 바닷길을 많이 이용했다.
아랍 상인은 바닷길로 국제 무역항인 광동성 광주(廣州), 복건성 천주(泉州), 절강성 영파(寧波) 등
에 와서 살다가, 원 나라의 아랍인 등용으로 북경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아랍 상인들이 일찍이 신라까지 와서 무역을 했고, 그리고 한국이 중국과 인접하여, 한국은 유목
문화를 많이 경험하여, 한국과 아랍은 유사한 특성이 많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처용”이나, 고려 가요 쌍화점에 나오는 회회 아비는 대식국, 사라센 제국
의 아라비아 상인이다. (정수일 교수).
2. 한반도에 아랍후손 1000만 시대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시대에도 왕족과 고위층은 성씨가 있었으나, 성씨 족보(Clan Genealogy)가 시작하기는 고려(918년)부터 이다.
지금 한국에 300여 성씨(family name, 통계청)가 있는데, 이중 240여 성씨가 중국계, 동남아계가 대부분인 외래 성씨 이다(Wikipedia). 족보는 혈족의 역사책이다.
한국에서 장사를 잘하는 사람을 “개성 상인”이라고 한다.
열악한 사막 땅에서 대상무역을 하며 살아온 아랍 상인들과 1000여년 교류한 신라, 고려, 조선에
귀화한 아랍 상인들이 많아, 오늘날 한반도에는 아랍 DNA를 가진 사람이 많다.
고려 이전에도 외국인 귀화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귀화는 고려 현종(1009-1031)때부터 이다.
아랍 상인들은 신라 초기에서 고려, 조선 초까지 귀화를 했다.
고려에 귀화한 이민족은 약 17만명, 12세기 고려 인구를 200만으로 추산한 “송사”의 기록에 근거
할 때 적지 않은 비율(8.5%)이다.
아랍상인 등 다양한 이민족 귀화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풍습, 여러 전통을 함께한 한민족인 단일
민족으로 유지된 것은 외래문화를 흡수하고 융화한 문화적 동화의 힘 때문이다. (고려사의 재발견,
박종기)
남자는 흰옷을 입었고, 여자는 외출 때 몸과 얼굴을 가리고, 자녀를 많이 낳았고, 된장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 우리들의 풍습은 지금의 아랍 문화와 유사하다.
2015년 한국에 유행한 MERS 환자들의 객담에서 검출된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 중동 사우디 등
아랍 지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보고가 있다. (국립보건연구원, 6.6)
한국인은 스탈린의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1937년)에 살아 남았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가 남한에만 3만명, 6.25 전쟁(1950-1953)이후 단기간에 수출강국을 만든 기업인, 열사의 사막에
서 철야 작업을 하며 열심히 일한 근로자들, 이들의 생존은 아랍 DNA가 있어 가능했다.
국제 금융시장은 “2050년 통일 한국이 국민소득 세계 2위”가 된다(2007년, 골드만 삭스)고 했다.
북한에 시장경제 모델인 “장마당’이 400여개이고, 암시장도 급속히 늘고 있다, 시장에 대한 북한
주민의 생계 의존도가 높아졌다(2.16, 세계일보).
학자들은 “한국은 통일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고려가 대식국(아라비아) 상인들을 100명씩 3번(1024년, 1025년)에 걸쳐 벽란도 입
국을 허용하여, 이들은 수도 개경에 들어와 방물(향료, 수은, 물약 등)을 바쳤다고 한다.
1040년 이후는 아라비아 상인의 왕래기록이 없는데, 아마 먼 항해에 비해 이익이 적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고려에 이어, 조선에도 이슬람 상인들에게 성(性)씨와 관직을 주고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도록 집
을 주는 특전도 베풀었다(유라시아 고려인, 김호준)
조선은 원나라에서 온 아랍 과학자들의 과학기술과 천문 역법을 발전시켜 이슬람과 서방 과학, 중국 전통과학을 모아 세종 시대에 창조적인 과학 문화가 발전 하였다.
신라, 고려, 조선에 온 아랍 상인들과 귀화인들은 그 당시 대단한 권력과 재력이 있었다.
고려 충렬왕(1274-1308)과 결혼을 하기 위해 원 세조의 딸 제국 공주가 고려에 올 때 고위 시종
(Attendant)으로 한국에 온 아랍인 중에 왕으로부터 장순용 이라는 이름을 하사(1275) 받은 분
이 덕수 장씨 시조이다. 장순용은 공주를 모시고 온 공주의 측근이라 그 당시 독자적인 외교력을
행사 할 수 없었던 고려로서는 장순용의 도움이 필요하여 고려 왕이 특별히 성씨를 하사하였고,
장순용도 고려에 많은 도움을 주며 귀화한 최초의 아랍인이다.(고려사, 김정위 교수)
이슬람 율법은 부인을 4명까지 허용하고,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이 풍습이다.
장순용의 후손 덕수 장씨는 남한에만 4만명, 남북한을 합하면 10만명이 될 것이라 한다.
한국이 아랍과 1400년 교류 역사를 감안하면 한반도에 귀화하여 동화되어 살고 있는 아랍 후손한국인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은 자살을 금한다.
한반도에 귀화한 아랍 상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무함마드 계시(610) 이후 이슬람 신도가 된 아랍 상인들은 이슬람 제국(Abbas왕조)과 아라비아
반도 어느 지역에 거주 하던지 종교 의무로 성지가 있는 사우디 메카, 메디나를 순례 해야 한다.
7세기부터 지금의 이란, 이라크가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세운 몽골 제국의 일 한국(汗國)이
몰락하기 까지는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는 국경이 없는 아랍문화를 가진 이슬람 제국이었다.
7세기에서 14세기까지 한반도에 온 아랍 상인들은 그들의 조상은 지금의 이란, 바그다드가 포함
된 일 한국(汗國) 1256-1353) 과 아라비아 반도 국가이다.
덕수 장씨에 이어 다른 아랍 상인들도 고려나 조선에서 성 씨를 부여 받았으나, 기록은 없다..
지금 한국에 이슬람 후손은, 알려진 설 씨, 태 씨 와 중국, 베트남에서 온 다른 성씨도 있다.
아랍(셈족)은 이슬람 창시 국가고, 이란(아리아인)과 터키(돌궐 투루크인)도 이슬람 국가이다.
아랍 상인들은 일찍이 신라를 시작으로, 가난한 한국을 많이 찾아 왔다.
한편으로는 고구려 유민으로 탈라스 전투(751)에 참여하여 포로(2만명)가 된 고구려인들이 아랍에 흩어져 살면서, 고려와 중국 문화를 전하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은 70년대 소위 “중동 건설 붐”기간 많은 근로자와 간호사들이 중동 산유국(이란 포함 아랍) 에 갔다. 이 지역을 다녀온 한국 근로자는 500만명이 넘는다.(한국-사우디 친선협회)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한 이슬람 창시자 아랍인 무함마드(570-632)이후 아랍은 대상무역과 해상무역으로 영토를 유럽과 아시아로 확장하며 위대한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만들었다.
지금 아랍 국가로는 이슬람 회의기구 OIC(Organization of the Islam Conference) 가입 57개국과
아랍 연맹 22개국으로 산유국이 많다.
지금 서울에 있는 사우디 투자회사 S-Oil 사장 Nasser D. Al-Mahasher도 한국 이름을 “나세일”
로, 그리고 Aramco 아시아 한국 사장 Othman A. Al-Ghamdi도 “오수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북한 권력자 김정은은 “아랍인을 미국과 결사항전을 벌이는 우리들의 동지이며, 무슬림(이슬람 신
도)은 한배를 탄 동지로 사랑 한다”고 하였다. 지난 2015년 북한 태양절(4.15) 행사에는 아랍인들
에게 비자 발급을 허용토록 지시 했다. (3.6, 북한자유방송)
중국 대사를 마치고 한국에 부임했다는 주한 이라크 대사는 2002년과 2003년 정월 달에, 그리고
주한 사우디 대사는 2003년에 평택 소재 덕수 장씨 종가를 방문 했다.
고려 왕으로부터 성씨를 하사 받은 덕수 장씨 종친회에서는 “한국-아라비아 관계”라는 영문 소책
자를 발행, 사우디 아라비아 “파이잘” 국왕에게 전달(1967.8.8)한 바 있다.
3. 한국 번영에 아랍 필요
아랍 문화 특성은 개방성(Openness), 다양성(diversity), 역동성(dynamism)이다.
한국은 일찍이 아랍과 교류하며 유목민 정신(Nomad Spirit, 혁신: Novatus)을 배웠다.
아랍인은 한때 세계를 제패(制覇) 했다.
개인에 대한 믿음과 응집력, 자유로운 사상, 상업(商業) 중시, 신의(信義) 없는 사람에게는 냉정
하리만큼 가혹, 손님과 친구에 호의적. 이동 지역에 대해 사전 관찰(사전 지식 없이 이동하면
생명과 재산을 모두 잃는다)로 유목민은 메마른 사막에서 살아남았다.
21세기는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라고 한다.
유목민에게는 공정한 경쟁이 중요하며, 유목민 역사는 도전과 개척의 연속이다.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유목민이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중국은 1000여년간 유목민이 지배한 나라이다.
북방 유목민이 수와 당(581-907년), 요(거란)와 금(여진)(1126-1234년), 원(몽골, 1209-1368), 청
(만주족)을 지배했다. 다만 북송(960-1126)과 명(1368-1644)은 유교 문화가 지배한 국가였다
아랍 학자들은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인접하여 전쟁 등 어려운 시기가 많았지만,
생존을 위해 먼 나라와 교류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휴전 분단국가로서 전쟁 위협
과 통일을 위해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부지런히 살고 있기에, 이러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오늘날
한국이 경제 성장 국가로 발전한 큰 원동력이라고 한다.
아랍인들은 70년대 소위 “중동 건설 붐”때 주야로 열심히 일한 한국인을 기억하고 있다.
아랍 상인들도 생존을 위해 일찍이 멀고 험한 길을 개척하며 중국, 인도, 베트남, 한국과 러시아
에 진출하였고, 지금에도 급속한 인구 증가(18억)로 미국, 유럽 등에 많이 진출하여 국제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랍은 한국을, 한국은 아랍을, 서로가 협력해야 번영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지금 아랍은 저유가, 내전, IS 테러 전쟁, MERS, 돼지 감기 등으로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극복이 가능하다.
중동 테러는 시대 발전으로 인한 유목문화의 쇠퇴(국경과 정착문화)현상으로 점차 사라질 것이다.
한국의 경색된 남북관계와 경제 발전 돌파구를 이슬람 상인 특유의 외교력으로 해결이 기대된다.
사우디 “Abdullah” 전 국왕은 즉위(2005.8)하자마자 중국을 먼저 방문했다.
아라비아 반도 중심 국가인 사우디의 교민들로부터 득문한 내용이다.
Damman 인근 Hufuf에 Al-Yun 마을이 있었다. 1200여년전 탈루스 전투에서 포로가 된 고구려
장수 중에 윤 장군이라는 사람이 이곳으로 이주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막 땅
이지만 물이 많이 나는 인근 Qatif 지역의 수로(水路)를 이용하여 벼농사도 했다.
Al-Yun 마을 사람들은 팥밥을 먹고, 된장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지금도 인근에 전해지고 있다.
족보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고 한다
이 지역은 사우디 주류인 수니파가 아닌 이란 계 시아파가 살고 있어, 탈루스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이란을 지나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온 고구려 유민으로 보인다
아라비아 지역에는 음식과 의복 등에서 한국과 유사한 풍습이 많이 있다. (한국-사우디 친선협회)
1400년 이슬람 역사에서 기독교와 갈등한 시기는 십자군 전쟁 200년, 오스만 재국이 비엔나를
공격한 100여년, 그리고 19세기 이후 유럽이 중동을 식민지한 200년 정도이고, 나머지 1000여년
은 두 문명이 긍정적인 교류를 가졌다.
이슬람 종교의 보수적 성향이 근대화 과정과 충돌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분쟁 씨앗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UAE는 아직 한번도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슬람의 정치 시스템은 “알라”(Allah)의 주권 하에 선출로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채용하는 이슬람 국가는 한곳도 없다. 지금은 전통적 군주제다. (아랍교류, 서정민)
서울을 방문(5.19.2015)한 인도 모디 총리는”한국은 인도 발전에 영감을 주는 나라”라고 했다.
인도의 공주가 신라의 김 수로왕과 결혼을 하여 공유하는 가치가 많다고 한다.
베트남 안남 왕국 Li씨 왕조 마지막 왕자(이용상)도 황해도 옹진군 화산에 와서, 고려 여인과 결
혼 하였다.
인도 공주와 베트남 왕자의 결혼 교류는 아랍 상인의 신라 바닷길 진출과 관련이 있다.
이민족(異民族)이 “한반도에 귀화하여 동화한 힘”이 한국인의 해외진출, 세계화에 기여를 했다.
지금 북한은 중국.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 20여개국에 근로자 5만 8000여명을 파견,
매년 3억불을 벌고 있다. 이는 개성공단 수입 1억 2000만 달러에 약 3배이다
남한에 온 탈북자는 3만여명이다.
이들은 중국 브로커 등을 통해 북한의 가족들에게 달러를 보낸다. 이 액수가 연간 100억원, 이
돈이 흘러 들어가는 곳은 400여개 장마당이다.
장마당은 개성공단과 비교도 안될 만한 강력한 시장 경제 실험장이다.
개성공단이 전시용이라면, 장마당은 2500만 북한 주민에게 실전 자본주의를 가르치는 곳이다
해외로 진출하여 전 세계로 미지의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기업인, 위험을 각오하고 남한에 온
탈북자, 북한 장마당을 이끄는 주역들은 아랍 문화를 아는 아랍 후예(後裔) 들이다
과거 한국에 살았던 아랍 상인들과 폐쇄된 북한의 장마당 상인들은 같은 산업 전사이다.
북한 인권 국제 이슈화나 정권 교체는 그들이 있어 가능하다.
우리에겐 탈북자라는 핵 미사일이 있다(조선, 박정훈)
전 북한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는 “6자 회담이 동력을 잃어 새 북핵 채널을 뚫을 시점이
왔다”고 했다. (5.23.2015, 아시아 리더십 컨프런스)
역사적으로 한국과 아랍이 만났을 때에는 위기를 극복했고 서로가 번영하였다.
이러한 시점에 아랍상인 한반도 귀화와 정착 연구 세미나 개최와, 과거 아랍상인 들이 많이 살던
벽란도 인근 강화도에 많은 아랍 국가들이 자국의 전통 문화를 계승, 보존하는 박물관, 교육관 등
종합 관광단지(가칭 “아랍문화단지”) 조성이 필요하다.
남북한에 흩어져 사는 1000만 아랍 후손들과 전 세계 아랍인들이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마련하면,
서로의 문화 이해와 경제 협력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KSFS는 2015년 상반기 두 차례 사우디 리야드를 방문, 사우디 국립대학교(KSU), 왕립과학기술원
(KACST), 사우디 관광위원회(SCTNH)에, “아랍인 한반도 귀화 와 정착” 세미나 개최 계획을 설명
했고, 주한 요르단, 카타르, 쿠웨이트, 이란, UAE 대사 등에도 세미나 개최 계획을 설명하였다.
금년 10월경 서울에서 개최 예정인 세미나에는 주한 이슬람 대사와 학자들도 참여 예정이다
(2016.4.8 Up-date 자료)
- 아랍인의 한반도 귀화와 정착, 어제와 오늘
1. 아랍 교류 1400년
아랍(Arab)은 지리적 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본래는 아라비아(Arabia)반도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7-12세기 무렵까지 아랍인들이 세운 아랍제국을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과 아랍의 교류는 신라(BC 57-AD 669)를 찾아온 아라비아 상인들로부터 시작한다.
신라는 비단, 검, 사향을, 아랍은 향료, 유리기구 등을 서로 교환 했다.
이런 교류 역사는 통일신라(AD 676-918)를 아랍 세계에 최초로 소개한 아라비아 상인 술래이만의 “중국과 인도 소식” 여행기(851)에 있다. 문헌에는 당시 신라 거주 아랍인들의 삶, 아랍인들이 바라본 신라의 지형, 자연환경, 생활상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유럽 세계지도에 한국이 등장한 시기보다 400여년이나 앞서는 아랍 지리학자의 세계지도(1154년 발행)는 한국-아랍 만남의 유구한 역사와 뿌리깊은 인연을 잘 보여주고 있다. 6세기 세계를 누비던 아랍 상인들은 초원 길(위구르 몽골 고원) 과 오아시스 사막 길(우루무치, 돈황)로, 그리고 바닷길(인도양 항로)로, 한국과 아랍의 역사적인 교역의 길을 개척하였다. (지리학자 Al-Idrisi, “천애 횡단 갈망자의 산책”)
통일 후 신라는 200년간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았다. 7세기말 신라의 대외무역은 발해, 당나라, 일본과도 이루어졌다. 당으로 가는 바닷길은 전라도 영암에서 상해로, 경기도 남양에서 산동반도로 가는 두 길이 있었고, 울산 항은 국제무역항으로 멀리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9세기 전반에는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 이라는 해군 및 무역기지를 설치하여 당나라에 가는 일본인들이 장보고가 보유한 수백 척의 배를 이용하여 해상무역이 더욱 발전하였다.
해상무역으로 재력과 부를 쌓은 인물로는 장보고를 비롯, 진주의 왕봉규, 개성(송악)의 작제건(왕건의 조부)등이 있고, 이들 중에는 고려 건국의 중심 세력도 있다(우리 역사, 한영우)
당 나라와 아랍 Abbas 왕조(이슬람 제국, 750-1258)와의 탈라스 전투(751)에서 생포된 당 포로
2만명중 다수가 고선지 장군을 따라간 고구려 유민들이다. 이들은 포로로서 아랍에 살면서 고구
려와 당 문화를 이슬람 권에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Abbas왕조 전반기(750-950)에는 정치, 경제가 안정되었고, 그 당시 당 나라(618-907)도 통일로 안정이 되어 두 지역간 교역이 활발하였다. 수, 당은 개방정책으로 이미 외국인을 시험으로 선발, 등용하여 신라 최치원도 당의 공무원이 되었고, 당과 신라는 인적 교류가 많았다.
신라 장보고(790-846)는 해상 무역을 하여, 이때 많은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도 왔다. 7세기 중엽 폐망 한 사산조 폐르시아 왕자 와비단이 651년 신라에 와서 20여년간 살다가, 왕정 복구를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로 귀환했다. (1230년 발행 “아랍 사서”)
아라비아인(아랍 상인)들은 한국을 “전염병이 없고, 물이 좋고, 땅이 기름지고, 사람들이 순박하며,
자연이 아름답다”고 하여, 이슬람 세계에 “불멸의 땅으로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이상향의 국가”
라고 소개 하여, 이때부터 아랍 상인들이 신라를 Al-Shila, Kaoli라고 불러 지금 한국을 Korea로
하게 되었다. (이슬람학자 Rashid Al-Din, 1247-1318, 세계통사’집시 Al-Tawarikh”)
Abbas 왕조의 알 라시드(786-809)재위 시대에는 당과 통일 신라를 잇는 길은 바닷길을 이용했다.
이슬람 상인들은 다우선 이라는 역풍에도 앞으로 전진하는 삼각 돛을 단 범선을 이용하여 바그다
드 외항 바스라, 페르시아만의 시라즈에서 동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당에 이르는 정기 범선
로(帆船路)를 개발했다.
그들은 순풍을 타고 아라비아 해를 통해 약 120일에 걸쳐 광주에 도착했다. 9세기 이슬람 상인은
중국 양주(揚州)에 수천 명의 이슬람 상인과 페르시아 상인이 거주했고, 신라와도 왕래를 했다.(하
룻밤에 읽는 중국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신라에 온 아랍인은 떠나려 하지 않았다”(마크디시, 창세와 역사서)
이슬람교는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 튀르크(터키)간의 오랜 전쟁기간(4-8세기) 급격히 전파되어
8세기에는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걸쳐 광범위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기간 신라에 이어 고려도 대외무역이 활발했다. 왕건도 무역에 종사하던 개성상인 후예이다.
Abbas왕조를 함락한 칭기즈칸이 당시 우수한 아랍 학자를 강제로 데리고 와서 몽골 정부 고위직
에 중용하여, 이슬람 문화가 중국(원나라)과 한국에 전파되었다.
칭기즈칸은 몽골제국 건설에 중앙 아시아 일대 대상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아랍 상인들은
몽골이 동서 교역로를 안정하게 지켜줄 것이라며 군자금과 적에 대한 정보도 제공 했다.
원나라(1215-1294)를 세운 쿠빌라이는 형제인 훌라구가 지배한 “일 한국(汗國)”에서 불러온 이슬람 기술자가 1백키로 넘는 돌을 발사하는 회회포(回回砲)를 제작, 남송을 통일하고, 20년간 이슬람 상인 아흐마드를 재무장관에,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진 이슬람 경제단체 오르톡(Ortag)들에게 이권을 부여하고, 동서를 잇는 초원과, 사막 길, 다닷길 네트워크를 개척, 유라시아 세계에 편입되는 통치 지배 시스탬을 구축했다. (하룻밤에 읽는 중국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원 나라는 중국을 통치하며, 상업적 마인드를 가진 색목인, 주로 아랍인을 중용 했다. 원나라 1억 2000만 인구에, 지배층 몽골인이 100만명, 제2 지배층 아랍인은 100만명이었다.
원나라는 등용한 아랍 지식인을 내정과 세무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성경의 “죄인(罪人)과 세리(稅吏)는 동의어로 비유”됨을 아랍인들도 알고 있다.
아랍인들은 외국인으로 악역을 하며 세금을 징수해야 하는 직업에 불만, 재력을 모으면 “살기 좋
다”는 고려로 이주를 희망한 것으로 보인다.
개성에 아랍 상인 집단촌이 있었고 이슬람 사원 예궁(禮宮)도 있었다.
왜구를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화약이 원나라에서 들어온 항구가 벽란도이다.
벽란도는 송 나라 때부터 국제 무역항으로, 아라비아, 요, 금, 원, 일본 등의 상인들도 많았다.
6-12세 서역 비단길은 돌궐, 거란, 여진, 몽골이 그리고 소그드, 티베트, 위구르와 유라시아 서부
정복 왕조들의 각축으로 이 시기 아랍 상인들은 안전한 바닷길을 많이 이용했다.
아랍 상인은 바닷길로 국제 무역항인 광동성 광주(廣州), 복건성 천주(泉州), 절강성 영파(寧波) 등
에 와서 살다가, 원 나라의 아랍인 등용으로 북경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아랍 상인들이 일찍이 신라까지 와서 무역을 했고, 그리고 한국이 중국과 인접하여, 한국은 유목
문화를 많이 경험하여, 한국과 아랍은 유사한 특성이 많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처용”이나, 고려 가요 쌍화점에 나오는 회회 아비는 대식국, 사라센 제국
의 아라비아 상인이다. (정수일 교수).
2. 한반도에 아랍후손 1000만 시대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시대에도 왕족과 고위층은 성씨가 있었으나, 성씨 족보(Clan Genealogy)가 시작하기는 고려(918년)부터 이다.
지금 한국에 300여 성씨(family name, 통계청)가 있는데, 이중 240여 성씨가 중국계, 동남아계가 대부분인 외래 성씨 이다(Wikipedia). 족보는 혈족의 역사책이다.
한국에서 장사를 잘하는 사람을 “개성 상인”이라고 한다.
열악한 사막 땅에서 대상무역을 하며 살아온 아랍 상인들과 1000여년 교류한 신라, 고려, 조선에
귀화한 아랍 상인들이 많아, 오늘날 한반도에는 아랍 DNA를 가진 사람이 많다.
고려 이전에도 외국인 귀화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귀화는 고려 현종(1009-1031)때부터 이다.
아랍 상인들은 신라 초기에서 고려, 조선 초까지 귀화를 했다.
고려에 귀화한 이민족은 약 17만명, 12세기 고려 인구를 200만으로 추산한 “송사”의 기록에 근거
할 때 적지 않은 비율(8.5%)이다.
아랍상인 등 다양한 이민족 귀화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풍습, 여러 전통을 함께한 한민족인 단일
민족으로 유지된 것은 외래문화를 흡수하고 융화한 문화적 동화의 힘 때문이다. (고려사의 재발견,
박종기)
남자는 흰옷을 입었고, 여자는 외출 때 몸과 얼굴을 가리고, 자녀를 많이 낳았고, 된장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 우리들의 풍습은 지금의 아랍 문화와 유사하다.
2015년 한국에 유행한 MERS 환자들의 객담에서 검출된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 중동 사우디 등
아랍 지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보고가 있다. (국립보건연구원, 6.6)
한국인은 스탈린의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1937년)에 살아 남았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가 남한에만 3만명, 6.25 전쟁(1950-1953)이후 단기간에 수출강국을 만든 기업인, 열사의 사막에
서 철야 작업을 하며 열심히 일한 근로자들, 이들의 생존은 아랍 DNA가 있어 가능했다.
국제 금융시장은 “2050년 통일 한국이 국민소득 세계 2위”가 된다(2007년, 골드만 삭스)고 했다.
북한에 시장경제 모델인 “장마당’이 400여개이고, 암시장도 급속히 늘고 있다, 시장에 대한 북한
주민의 생계 의존도가 높아졌다(2.16, 세계일보).
학자들은 “한국은 통일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고려가 대식국(아라비아) 상인들을 100명씩 3번(1024년, 1025년)에 걸쳐 벽란도 입
국을 허용하여, 이들은 수도 개경에 들어와 방물(향료, 수은, 물약 등)을 바쳤다고 한다.
1040년 이후는 아라비아 상인의 왕래기록이 없는데, 아마 먼 항해에 비해 이익이 적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고려에 이어, 조선에도 이슬람 상인들에게 성(性)씨와 관직을 주고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도록 집
을 주는 특전도 베풀었다(유라시아 고려인, 김호준)
조선은 원나라에서 온 아랍 과학자들의 과학기술과 천문 역법을 발전시켜 이슬람과 서방 과학, 중국 전통과학을 모아 세종 시대에 창조적인 과학 문화가 발전 하였다.
신라, 고려, 조선에 온 아랍 상인들과 귀화인들은 그 당시 대단한 권력과 재력이 있었다.
고려 충렬왕(1274-1308)과 결혼을 하기 위해 원 세조의 딸 제국 공주가 고려에 올 때 고위 시종
(Attendant)으로 한국에 온 아랍인 중에 왕으로부터 장순용 이라는 이름을 하사(1275) 받은 분
이 덕수 장씨 시조이다. 장순용은 공주를 모시고 온 공주의 측근이라 그 당시 독자적인 외교력을
행사 할 수 없었던 고려로서는 장순용의 도움이 필요하여 고려 왕이 특별히 성씨를 하사하였고,
장순용도 고려에 많은 도움을 주며 귀화한 최초의 아랍인이다.(고려사, 김정위 교수)
이슬람 율법은 부인을 4명까지 허용하고,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이 풍습이다.
장순용의 후손 덕수 장씨는 남한에만 4만명, 남북한을 합하면 10만명이 될 것이라 한다.
한국이 아랍과 1400년 교류 역사를 감안하면 한반도에 귀화하여 동화되어 살고 있는 아랍 후손한국인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은 자살을 금한다.
한반도에 귀화한 아랍 상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무함마드 계시(610) 이후 이슬람 신도가 된 아랍 상인들은 이슬람 제국(Abbas왕조)과 아라비아
반도 어느 지역에 거주 하던지 종교 의무로 성지가 있는 사우디 메카, 메디나를 순례 해야 한다.
7세기부터 지금의 이란, 이라크가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세운 몽골 제국의 일 한국(汗國)이
몰락하기 까지는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는 국경이 없는 아랍문화를 가진 이슬람 제국이었다.
7세기에서 14세기까지 한반도에 온 아랍 상인들은 그들의 조상은 지금의 이란, 바그다드가 포함
된 일 한국(汗國) 1256-1353) 과 아라비아 반도 국가이다.
덕수 장씨에 이어 다른 아랍 상인들도 고려나 조선에서 성 씨를 부여 받았으나, 기록은 없다..
지금 한국에 이슬람 후손은, 알려진 설 씨, 태 씨 와 중국, 베트남에서 온 다른 성씨도 있다.
아랍(셈족)은 이슬람 창시 국가고, 이란(아리아인)과 터키(돌궐 투루크인)도 이슬람 국가이다.
아랍 상인들은 일찍이 신라를 시작으로, 가난한 한국을 많이 찾아 왔다.
한편으로는 고구려 유민으로 탈라스 전투(751)에 참여하여 포로(2만명)가 된 고구려인들이 아랍에 흩어져 살면서, 고려와 중국 문화를 전하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은 70년대 소위 “중동 건설 붐”기간 많은 근로자와 간호사들이 중동 산유국(이란 포함 아랍) 에 갔다. 이 지역을 다녀온 한국 근로자는 500만명이 넘는다.(한국-사우디 친선협회)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한 이슬람 창시자 아랍인 무함마드(570-632)이후 아랍은 대상무역과 해상무역으로 영토를 유럽과 아시아로 확장하며 위대한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만들었다.
지금 아랍 국가로는 이슬람 회의기구 OIC(Organization of the Islam Conference) 가입 57개국과
아랍 연맹 22개국으로 산유국이 많다.
지금 서울에 있는 사우디 투자회사 S-Oil 사장 Nasser D. Al-Mahasher도 한국 이름을 “나세일”
로, 그리고 Aramco 아시아 한국 사장 Othman A. Al-Ghamdi도 “오수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북한 권력자 김정은은 “아랍인을 미국과 결사항전을 벌이는 우리들의 동지이며, 무슬림(이슬람 신
도)은 한배를 탄 동지로 사랑 한다”고 하였다. 지난 2015년 북한 태양절(4.15) 행사에는 아랍인들
에게 비자 발급을 허용토록 지시 했다. (3.6, 북한자유방송)
중국 대사를 마치고 한국에 부임했다는 주한 이라크 대사는 2002년과 2003년 정월 달에, 그리고
주한 사우디 대사는 2003년에 평택 소재 덕수 장씨 종가를 방문 했다.
고려 왕으로부터 성씨를 하사 받은 덕수 장씨 종친회에서는 “한국-아라비아 관계”라는 영문 소책
자를 발행, 사우디 아라비아 “파이잘” 국왕에게 전달(1967.8.8)한 바 있다.
3. 한국 번영에 아랍 필요
아랍 문화 특성은 개방성(Openness), 다양성(diversity), 역동성(dynamism)이다.
한국은 일찍이 아랍과 교류하며 유목민 정신(Nomad Spirit, 혁신: Novatus)을 배웠다.
아랍인은 한때 세계를 제패(制覇) 했다.
개인에 대한 믿음과 응집력, 자유로운 사상, 상업(商業) 중시, 신의(信義) 없는 사람에게는 냉정
하리만큼 가혹, 손님과 친구에 호의적. 이동 지역에 대해 사전 관찰(사전 지식 없이 이동하면
생명과 재산을 모두 잃는다)로 유목민은 메마른 사막에서 살아남았다.
21세기는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라고 한다.
유목민에게는 공정한 경쟁이 중요하며, 유목민 역사는 도전과 개척의 연속이다.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유목민이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중국은 1000여년간 유목민이 지배한 나라이다.
북방 유목민이 수와 당(581-907년), 요(거란)와 금(여진)(1126-1234년), 원(몽골, 1209-1368), 청
(만주족)을 지배했다. 다만 북송(960-1126)과 명(1368-1644)은 유교 문화가 지배한 국가였다
아랍 학자들은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인접하여 전쟁 등 어려운 시기가 많았지만,
생존을 위해 먼 나라와 교류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휴전 분단국가로서 전쟁 위협
과 통일을 위해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부지런히 살고 있기에, 이러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오늘날
한국이 경제 성장 국가로 발전한 큰 원동력이라고 한다.
아랍인들은 70년대 소위 “중동 건설 붐”때 주야로 열심히 일한 한국인을 기억하고 있다.
아랍 상인들도 생존을 위해 일찍이 멀고 험한 길을 개척하며 중국, 인도, 베트남, 한국과 러시아
에 진출하였고, 지금에도 급속한 인구 증가(18억)로 미국, 유럽 등에 많이 진출하여 국제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랍은 한국을, 한국은 아랍을, 서로가 협력해야 번영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지금 아랍은 저유가, 내전, IS 테러 전쟁, MERS, 돼지 감기 등으로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극복이 가능하다.
중동 테러는 시대 발전으로 인한 유목문화의 쇠퇴(국경과 정착문화)현상으로 점차 사라질 것이다.
한국의 경색된 남북관계와 경제 발전 돌파구를 이슬람 상인 특유의 외교력으로 해결이 기대된다.
사우디 “Abdullah” 전 국왕은 즉위(2005.8)하자마자 중국을 먼저 방문했다.
아라비아 반도 중심 국가인 사우디의 교민들로부터 득문한 내용이다.
Damman 인근 Hufuf에 Al-Yun 마을이 있었다. 1200여년전 탈루스 전투에서 포로가 된 고구려
장수 중에 윤 장군이라는 사람이 이곳으로 이주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막 땅
이지만 물이 많이 나는 인근 Qatif 지역의 수로(水路)를 이용하여 벼농사도 했다.
Al-Yun 마을 사람들은 팥밥을 먹고, 된장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지금도 인근에 전해지고 있다.
족보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고 한다
이 지역은 사우디 주류인 수니파가 아닌 이란 계 시아파가 살고 있어, 탈루스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이란을 지나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온 고구려 유민으로 보인다
아라비아 지역에는 음식과 의복 등에서 한국과 유사한 풍습이 많이 있다. (한국-사우디 친선협회)
1400년 이슬람 역사에서 기독교와 갈등한 시기는 십자군 전쟁 200년, 오스만 재국이 비엔나를
공격한 100여년, 그리고 19세기 이후 유럽이 중동을 식민지한 200년 정도이고, 나머지 1000여년
은 두 문명이 긍정적인 교류를 가졌다.
이슬람 종교의 보수적 성향이 근대화 과정과 충돌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분쟁 씨앗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UAE는 아직 한번도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슬람의 정치 시스템은 “알라”(Allah)의 주권 하에 선출로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채용하는 이슬람 국가는 한곳도 없다. 지금은 전통적 군주제다. (아랍교류, 서정민)
서울을 방문(5.19.2015)한 인도 모디 총리는”한국은 인도 발전에 영감을 주는 나라”라고 했다.
인도의 공주가 신라의 김 수로왕과 결혼을 하여 공유하는 가치가 많다고 한다.
베트남 안남 왕국 Li씨 왕조 마지막 왕자(이용상)도 황해도 옹진군 화산에 와서, 고려 여인과 결
혼 하였다.
인도 공주와 베트남 왕자의 결혼 교류는 아랍 상인의 신라 바닷길 진출과 관련이 있다.
이민족(異民族)이 “한반도에 귀화하여 동화한 힘”이 한국인의 해외진출, 세계화에 기여를 했다.
지금 북한은 중국.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 20여개국에 근로자 5만 8000여명을 파견,
매년 3억불을 벌고 있다. 이는 개성공단 수입 1억 2000만 달러에 약 3배이다
남한에 온 탈북자는 3만여명이다.
이들은 중국 브로커 등을 통해 북한의 가족들에게 달러를 보낸다. 이 액수가 연간 100억원, 이
돈이 흘러 들어가는 곳은 400여개 장마당이다.
장마당은 개성공단과 비교도 안될 만한 강력한 시장 경제 실험장이다.
개성공단이 전시용이라면, 장마당은 2500만 북한 주민에게 실전 자본주의를 가르치는 곳이다
해외로 진출하여 전 세계로 미지의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기업인, 위험을 각오하고 남한에 온
탈북자, 북한 장마당을 이끄는 주역들은 아랍 문화를 아는 아랍 후예(後裔) 들이다
과거 한국에 살았던 아랍 상인들과 폐쇄된 북한의 장마당 상인들은 같은 산업 전사이다.
북한 인권 국제 이슈화나 정권 교체는 그들이 있어 가능하다.
우리에겐 탈북자라는 핵 미사일이 있다(조선, 박정훈)
전 북한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는 “6자 회담이 동력을 잃어 새 북핵 채널을 뚫을 시점이
왔다”고 했다. (5.23.2015, 아시아 리더십 컨프런스)
역사적으로 한국과 아랍이 만났을 때에는 위기를 극복했고 서로가 번영하였다.
이러한 시점에 아랍상인 한반도 귀화와 정착 연구 세미나 개최와, 과거 아랍상인 들이 많이 살던
벽란도 인근 강화도에 많은 아랍 국가들이 자국의 전통 문화를 계승, 보존하는 박물관, 교육관 등
종합 관광단지(가칭 “아랍문화단지”) 조성이 필요하다.
남북한에 흩어져 사는 1000만 아랍 후손들과 전 세계 아랍인들이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마련하면,
서로의 문화 이해와 경제 협력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KSFS는 2015년 상반기 두 차례 사우디 리야드를 방문, 사우디 국립대학교(KSU), 왕립과학기술원
(KACST), 사우디 관광위원회(SCTNH)에, “아랍인 한반도 귀화 와 정착” 세미나 개최 계획을 설명
했고, 주한 요르단, 카타르, 쿠웨이트, 이란, UAE 대사 등에도 세미나 개최 계획을 설명하였다.
금년 10월경 서울에서 개최 예정인 세미나에는 주한 이슬람 대사와 학자들도 참여 예정이다
(2016.4.8 Up-date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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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bnews A Saudi Research and Publishing Company publication A Saudi Research and marketing Group company P.O. Box 478, Riyadh
abdul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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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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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dullah | 2026.02.19 | 0 |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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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이슬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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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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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유민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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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살만 왕세자, 결혼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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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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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사우디-카타르 순방…주요 경제 성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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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 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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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Seoul to Saudi: How Korean and Japanese stores are influencing Saudi tas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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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해외 정상 최초로, 사우디 最古의 ‘킹 사우드 대학교’서 강연
abdul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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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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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dullah | 2024.09.13 | 0 | 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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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text of joint statement adopted by leaders of Korea, Saudi Arabia Posted : 2023-10-24 16:59
abdul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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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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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text of joint statement adopted by leaders of Korea, Saudi Arabia: 2023-10-24
abdul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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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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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와 네덜란드 왕국 정부 간 공동성명 2023.12.14
abdul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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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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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그룹-사우디, 신사업 기회 발굴 ‘맞손’ 기자명이성은 기자 입력 2023.12.1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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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엑스포 ‘징비록’ 경쟁자의 ‘반칙’과 회원국의 ‘배신’만 탓해서야 사우디가 이긴 진짜 이유 그걸 찾아야 재도전도 가능 이인열 기자 입력 2023.12.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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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 사우디와 MOU…“사업기회 발굴 공동 협업팀 구성” 입력 2023-12-13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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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차관 “중동 순방 성과 107조…수주사업 차질 없이 이행” 입력 2023-12-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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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dullah | 2023.12.14 | 0 | 311 |